기말고사의 마지막 장을 넘기던 날, 우리는 해방감 대신 새로운 시작을 느꼈다.
이공계 학생에게 3학년은 단순히 학년의 끝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이공계생이라면 누구나 기본 목표로 삼는 산업기사 자격증이라는 다음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산업인력공단이 주최하는 이 국가기술자격증은 우리에게 피할 수 없지만 피해서는 안되는 도전이었다.
우리는 환경공학 전공생답게 수질, 대기, 산업위생 등 다양한 환경 및 안전 관련 자격증 중에서 고민해야 했다.
나는 예전부터 대기환경기사에 뜻을 두고 있었지만 문득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졌다.
언제나처럼 그녀에게 연락해 어떤 자격증을 공부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곧 답장이 왔다.
"음... 나는 산업위생을 따려고 해!!"
예상대로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택했지만 지금은 둘 다 ‘공부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기말고사가 끝났다고 해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나는 학생회 활동으로 다른 학생들보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던 터라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조바심보다 더 컸던 것은 그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공부할 책을 샀냐고 물었다.
물론 그녀가 아직 책을 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던진 질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에게서 “아직 못 샀어”라는 답이 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럼 같이 서점 갈까?" 하고 제안했다.
그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나도 어떤 책 살지 몰라서 같이 고민할 사람이 마침 필요했어! 언제 시간 돼?"
라며 환한 답을 보냈다.
나는 그녀에게 가능한 시간에 맞추겠다고 했고 우리는 다음 날 낮 영등포 타임스퀘어 서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내일 그녀를 또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행복감에 젖어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우리는 영등포역에서 만났다.
겨울이라 그런지 둘 다 두툼한 옷차림이었다.
누가 봐도 예쁘고 귀여운 그녀는 두꺼운 겨울옷마저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반한 것을 느꼈다.
평소 같으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서점으로 향했겠지만, 오늘은 왠지 모를 조바심 때문인지
그럴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녀와 나란히 서점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자격증 코너를 찾아 함께 책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말 자격증 교재를 만드는 출판사가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우리는 각자 원하는 책들을 찾아 서로에게 보여주며 의견을 물어보았다.
같은 책을 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동안 나는 어떤 책을 사야 할지 집중해서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마저도 너무 귀여웠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필요한 책을 구매하고 서점을 나왔다.
우리는 방금 산 책들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 마실 음료를 주문했다.
카페 음악 소리와 우리 각자의 볼펜 소리만이 들려왔지만 그녀와 함께 공부한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기뻤다.
각자의 공부를 마치고 카페를 나설 땐 배가 고팠다.
우리는 "확실히 공부하면 배가 고파진다니까!" 하며 무엇을 먹을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곱창이 먹고 싶다고 했고 나는 전에 가봤던 곱창집을 추천했다.
곱창집에 앉아 우리는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대화가 오가는 동안 우리는 시험의 부담에서 벗어나 온전히 둘만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겨울의 시작점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존재로 인해 더욱 따뜻한 하루를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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