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우리 사이, 네살 (8)

양호양호 2025. 6. 2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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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서의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데이트라 부르기엔 아직 조심스러웠지만 그 날의 모든 순간이 뇌리에 박혀 아련한 잔향을 남겼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2학년의 캠퍼스 생활을 함께 채워나가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연락을 건넸다. "다음에 한강 또 가볼래요? 이번엔 다른 지구로 가볼까?" 

그녀는 언제나처럼 밝게 "좋아!"라고 답했다.

파주 외곽의 예쁜 카페, 작은 갤러리, 그리고 따뜻한 겨울이 오기 전 다시 한강을 걷자는 나의 제안에도 그녀는 한결같이

좋다고 하였다. 그녀의 긍정적인 반응은 내 마음속 작은 불씨를 더 선명하게 타오르게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학생'이라는 이름표가 있었다. 

중간고사가 다가왔고 이내 기말고사 기간이 찾아왔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학업의 시간 속에서 나는 문득 그녀와의 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이 공부할래?" 나의 제안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좋아!! 같이 하자!!" 하고 화답해주었다.

강의실이 비는 시간, 혹은 주말 오후, 우리는 도서관 대신 텅 빈 강의실을 택했다. 

각자의 교재를 펼쳐두고 공부를 하다가도 이따금씩 찾아오는 쉬는 시간에는 끊이지 않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분명 그녀는 나보다 학업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기에 내가 건네는 시시콜콜한 농담이 때로는 방해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내게 짜증 낸 적 없었다. 귀찮을 법한 순간에도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정말 집중이 필요하다 싶을 땐 내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을 만큼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조금만 더 볼게~~ 미안~" 나는 그런 그녀의 배려에 오히려 미안해지곤 했고 덕분에 나 역시 더욱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녀의 배려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의 책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다 문득 허기가 밀려왔다.

"뭐 좀 먹을까?" 나의 물음에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반짝이는 눈으로 "매운 거!"라고 답했다.

그녀의 단호한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엽기 떡볶이 어때?" 나의 제안에 그녀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임 없이 주문을 마친 우리는 이내 뜨거운 떡볶이 앞에서 고군분투했다.

"하아, 너무 매워…" 그녀는 연신 땀을 훔치며 힘들어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판기로 향했고, 시원한 식혜를 뽑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얼른 식혜를 받아들고 들이켰다.

매운 기운이 가시자 그녀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았고 나는 그 작은 변화에도 더없이 행복해졌다.

우리는 매콤한 떡볶이를 함께 이겨내며 시험이 끝나면 무엇을 할지....

방학 동안 어떤 추억을 만들지에 대한 설레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야기 도중 나는 문득 다시 한강이 그리워졌다. "우리, 겨울 오기 전에 한강 한 번 더 갈까? 이번엔 여의도 지구로 가보자!."

그녀의 눈이 다시금 초롱초롱 빛났다. "음!! 좋아!!!"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엉뚱한 욕심이 들었다.

"오늘 공부 많이 했는데… 지금 한강 갈까?" 그녀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이내 나를 올려다본 그녀의 눈빛에는 아쉬움과 함께 학업에 대한 책임감이 엿보였다. "아직 조금 불안해… 다음에 가면 안 될까?"

그녀의 솔직한 마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게 맞다!!"

다시 우리는 책 속으로 파고들었다. 

해가 기울고 어둠이 깔릴 무렵 우리는 함께 빈 강의실을 나섰다. 학교 잔디밭을 천천히 걸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머리 위로는 맑은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오늘 별… 정말 예쁘지 않아?"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녀에게 향했고 그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직이 속삭였다.

"웅.... 진짜 이쁘다...  오늘 같은 하늘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그 순간, 내 손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을 향했고, 따뜻한 온기가 맞닿았다.

우리는 마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학교 옆 강가를 한참 동안 걸었다.

굳이 말을 나누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손을 잡은 채 걷는 매 순간이 영원 같았다.

늦은 시각이 되어 나는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려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혼자 갈게" 나는 아쉬움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조심히 가고 도착하면 연락줘!!"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할 무렵 예상치 못한 그녀의 연락이 도착했다.

또다시 '고민'이 생겼다는 메시지였다. 어떤 고민인지 묻자, 그녀는 한참 만에 답장을 보내왔다.

"나… 그 오빠한테 고백받았어. 꽃도 받았어…"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라니.

같은 과의 동갑 친구가 그녀의 집 앞에 찾아왔다는 말에, 나는 도대체 왜 찾아온 것인지, 어떤 상황인 건지 물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나를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고백… 받아줬어?" 나의 떨리는 질문에 그녀는 짧게 답했다.

"고민해보고 답해준다고 했어…"

또다시 찾아온 시련에 나는 온몸의 힘이 빠지는 듯했다.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억누르려 해도 밀려드는 불안감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 

 

내 마음은 잠들지 못하고 온 밤을 뒤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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